'숯의 화가' 이배, 베네치아 비엔날레 달군다

입력 2024-02-20 18:51   수정 2024-02-21 00:20


대한민국 경북 최남단의 청도군.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주민들이 모여 ‘달집태우기’ 민속 의례를 행해왔다. 소나무 가지를 짚으로 엮은 ‘달집’에 불을 지피며 소원 성취와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다. 불에 타고 남은 숯 조각은 행운의 부적처럼 여겨 간직되곤 했다.

민초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은 달집태우기 풍습이 이탈리아에서 불을 지핀다. ‘세계 최대의 미술 축제’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공식 부대행사로 선정된 이배 작가(67)의 개인전 ‘달집태우기’를 통해서다. 베네치아 빌모트 파운데이션에서 오는 4월 20일부터 열리는 이번 전시는 한솔문화재단 뮤지엄산과 빌모트 파운데이션이 공동 주관하고, 조현화랑이 후원했다.

이배 작가는 20일 서울 논현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라져가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동양 작가들이 세잔과 모네를 공부하듯, 겸재와 추사의 작품세계를 서양 작가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며 “그 연결고리를 고민하던 중 고향 청도의 ‘달집태우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숯의 화가’로도 유명한 이배 작가는 1956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1990년대부터 ‘숯’이라는 재료와 서예를 연상시키는 흑백의 추상을 통해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한국 작가 최초로 미국 맨해튼의 심장인 록펠러센터 채널가든에 6.5m 높이의 숯 더미 형상 조각 ‘불로부터’를 전시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리움미술관, 프랑스 파리 기메 박물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전시는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 가로 21m의 대형 화면에 상영되는 영상작품 ‘버닝’(2024)이 먼저 관객을 맞이한다. 오는 24일 정월대보름을 맞아 작가가 청도에서 진행할 ‘달집태우기’의 전 과정을 영상에 담을 예정이다. 세계 각지에서 작가한테 보내온 소원을 한지에 옮겨 적고, 이를 달집과 함께 태운다는 구상이다. 음향 작업에 ‘미국의 가장 혁신적인 작곡가’로 꼽히는 토드 마코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참여했다.

두 번째 공간에는 역동적인 달집태우기와 상반되는 정적인 조각 작품들이 들어선다. 높이 4.6m의 조각 ‘먹’(2024)은 숯 그을음을 아교와 배합해 만드는 전통 먹을 형상화했다. 짐바브웨에서 공수한 검은색 화강암을 깎아 세운다. 작가는 “한국의 전통 문예는 먹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며 “영국 스톤헨지의 석상처럼 한국의 먹을 우뚝 세우고 싶다”고 했다.

조각을 둘러싼 벽면에는 일필휘지로 휘몰아치는 듯한 평면 설치작 세 점이 걸린다. 이배 작가의 ‘붓질’(2024) 연작이다. 이탈리아 파브리아노 지역의 친환경 제지를 한국의 전통 ‘배접’ 방식으로 도배한 배경에 숯을 도료 삼아 그린 작품들이다.

‘먹’과 ‘붓질’은 베네치아의 운하로 통하는 빌모트 파운데이션 건물 정원으로 이어진다. 전시의 마지막 공간인 구조물 ‘달’(2024)이 이곳을 장식한다. 천장의 노란색 셀로판을 통해 투과하는 자연광으로 정월대보름의 달빛을 연출할 계획이다. 작가가 유년 시절 고향 사과밭에서 마주 봤던 달빛을 떠올리며 구상한 결과다.

이배 작가는 “불에서 시작해 숯을 거치고, 물가로 이어지는 전시를 통해 자연의 호흡과 리듬을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시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기간 종료일인 오는 11월 24일까지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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